2017 올해의 사진
표지가 네 종류인 송년호

‘올해의 인물’은 편집국 기자들의 무기명 투표로 선정된다. 2007년 창간 첫해에는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를 꼽았다. 인물뿐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 아고라(2008년), 희망버스(2011년) 등이 뽑히기도 했다. 올해는 투표 결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세였다. 창간 이래 현직 대통령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는 처음이다. 그만큼 문 대통령 취임 이후 7개월은 인상적이었다.

광장의 유권자들은 촛불을 들고 경제권력(이재용)과 정치권력(박근혜)을 탄핵했다. 탄핵 뒤, 침몰한 진실이 1073일 만에 인양되었다. ‘촛불 대선’을 거쳐 문 대통령은 새 시대의 첫차에 올랐다. 하지만 경북 성주 할머니들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봄은 더뎠다. 탐욕이 부른 환경의 역습은 밥상에 오르는 달걀에까지 미쳤고, 포항 지진은 후쿠시마 악몽이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란 것을 실감하게 했다. 로힝야족 아이들의 비극은 국제적인 민주화운동가의 실체를 드러냈다.

이번 송년호도 지난해처럼 ‘올해의 사진’으로 꾸몄다. <시사IN> 사진기자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사진가 25명이 참여했다. 20대 정병혁 사진가부터 60대 박종우 사진가까지 국내외에서 2017년을 기록한 이들이 참여해주었다. 큐레이터를 맡은 이상엽 사진가가 있어서 가능했다. 공유정옥 김금희 김민섭 김세윤 김애란 김용진 김수상 김현 김형민 남궁인 문태준 변영주 배명훈 배순탁 서효인 은유 유현아 이기호 이문재 이진우 이창근 정세랑 조남주 최은영 등이 글을 보탰다.

올해 송년호는 특별히 표지를 네 종류로 만들었다. ‘올해의 인물’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 표지, 촛불·노동·난민 등을 포착한 ‘올해의 사진’을 내세운 또 다른 표지들이다. 역사의 기록인 사진에 담긴 2017년을 풍부하게 새기기 위해서다. 독자에게는 무작위로 배포된다.

올해의 사진과 짧지만 여운이 남는 글로 2017년을 ‘소장’하시길. <시사IN>을 애독해준 독자 여러분께 “평화를 빕니다!”

<시사IN> 편집국장 고제규

© 홍진훤
© 최형락
한국인의 취미 ‘국난 극복’

사진 홍진훤 최형락·글 정세랑(소설가)

일 때문에 가족 때문에 한국을 떠나 살고 있는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은 한국이 예전보다 괜찮아 보여” 하는 말을 거듭해서 들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보는 게 안쪽에서 보는 것보다 정확할지도 모른다. 나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지난겨울 광장을 걷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손에 들고 있었던 건 정확히는 촛불보다 야광봉에 가까웠고, 사람들이 저마다 들고 나온 그 다채롭고 즐거운 빛들은 바닷속 물고기 무리를 떠올리게 했다. 걷는 것이 꼭 헤엄치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게 엉망이라고 느꼈었다. 발밑이 꺼지는 기분으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 속에서 어떤 경이로운 경험을 공통으로 하게 되었고, 이제 엉망인 부분들을 맞닥뜨려도 예전처럼 낙담하지는 않는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엉망에서 벗어나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흥미로운 나라에 살고 있다. 기이하고 유쾌한 자부심이 생겼다. 엉킨 것을 한 줄, 한 줄 풀어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뤄나갈, 아직 오지 않은 공동체를 그리며 기다린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법재판소 탄핵소추안 인용 다음 날인 3월11일 서울 광화문광장. ©홍진훤
온몸을 불빛으로 감싸고 LED 초를 든 광장의 주권자. ©최형락
© 이명익
저 웃음의 의미는?

사진 이명익·글 배명훈(소설가)

12월 달력을 펼치는 순간 12월20일이 빨간 날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새삼 놀란다. 연말마다 ‘올해는 한 일도 없이 참 빨리도 지나갔구나’ 하는 감상뿐인데, 돌이켜보니 올해는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달력이 거짓말을 하게 만든 해였다. 차창 안의 그는, 방심하고 있으면 언제든 다시 돌아오겠노라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다. ‘스스로 민주주의를 달성한 국민의 격’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은, 이제 ‘몇 번이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되찾아낸 국민의 격을 나이테처럼 한 겹 더 쌓는 데 성공했다. 너무나 아슬아슬해서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도 몇 겹은 더 쌓게 되겠지. 12월20일이 검은 날인 게 정말로 다행스러운 연말이다.

© 신선영
황태자의 첫 구속

사진 신선영·글 차형석 기자

8월25일 ‘이재용 재판’ 1심 선고는 ‘세기의 재판’으로 불렸다. 뇌물공여, 횡령, 재산 국외도피, 범죄수익 은닉, 위증 등 5개 혐의에 유죄·일부 유죄. 징역 5년형.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995년 아버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여 원을 증여받아 8조8422억원(2017년 11월1일 주식 보유가치 평가액)으로 재산을 불렸다. 그는 ‘편법 상속’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 주용성
© 주용성
© 정병혁
우울의 책략

사진 주용성 정병혁·글 이기호(소설가)

시린 바람이 불던 12월 초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을 지나다가 대형 성조기를 들고 있는 일군의 ‘태극기 부대’를 만났다. 젊은 사람들은 ‘미쳤네’ ‘정상이 아니야’ 같은 말들을 중얼거리면서 집회 장소 옆을 빠르게 지나쳤다. 하지만 그 옆에서 오랜 시간 지켜보니, 미쳤다느니, 정상이 아니라느니, 따위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우울이 거기 숨어 있었다. 소중한 무언가를 빼앗기고 잃어버렸다고 믿는 사람들. 그렇게 믿어야만 겨우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는 우울의 책략. 트럼프는 알까? 자신이 없는 곳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시린 바람을 견디며 서 있다는 사실을. 물론 이 사랑은 트럼프가 몰라야만 완성되는 사랑이다.

11월4일 서울 광화문광장.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념 한·미동맹 강화 및 박근혜 대통령 정치투쟁 지지 태극기 집회’. ©주용성
11월4일 서울 광화문광장. 트럼프 방한 반대 투쟁에 나선 시민들. ©주용성
9월2일 서울 종로. ‘박근혜 무죄 석방’을 요구하는 태극기 집회. ©정병혁
© 김흥구
© 이명익
미지의 시간을 껴안은 아이들

사진 이명익 김흥구·글 김애란(소설가)

화면은 얼핏 공평하게 양분된 듯 보이나 죽음의 자리가 조금 더 넓다. 어른 보폭으로 치면 반 보 혹은 한 보 정도. 오른쪽 공간의 정중한 물러섬이랄까 마땅한 양보가 눈에 띈다. 여기 없는 이뿐 아니라 있는 이들을 위한 안배. 복도는 색색의 포스트잇과 형광등으로 화사한데 계단 안으로는 바깥의 자연광만 희미하게 들어온다. 그런데 이상하지. 보다 어둑한 곳이 더 생기를 띠는 건. 공간에 모순을 만들어내는 요소는 하나다. 거기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 층계참, 한 아이가 나비처럼 하늘로 도약한다. 아이는 온몸으로 빛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뒤를 따르는 다른 아이들의 걸음이 무심하고 자연스러워 예쁘다. 익숙하고 지루하기조차 한 일상이 얼마나 귀한지, 복도 위 고요는 웅변한다. 학습용 고사성어의 가치와 교실 안 적막이 부딪쳐 무상하다. 죽음은 모든 말을 압도한다. 그것이 옳은 말이라도 그렇다.

2016년 8월 안산 단원고등학교 ‘기억교실’은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으로 임시 이전되었다. ©김흥구
3월24일 1073일 만에 세월호가 물 위로 올라왔다. ©이명익
© 박병문
© 박병문
© 박병문
© 박병문
검은 도시의 여자 광부

사진 박병문·글 은유(작가)

여자 광부. 본 적 없는 사람 풍경, 아득해서 사무치는 말이다. 노동 현장으로서 지하 1000m의 막장이 그렇듯이. “착취의 가장 적나라한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며 탄광의 삶을 밝혀낸 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에도 없던 존재다. 여자 광부는 선탄부라 불린다. 광부가 캔 석탄에서 잡석이나 이물질을 골라내는 작업을 한다. 막장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에게 먹고살게끔 회사가 내어준 일자리다. 종일 서서 괴탄을 골라내면 얼굴엔 검은 분진이 땀에 엉켜 다닥다닥 들러붙는다. 거대한 묵묵의 세계, 백열(白熱)의 손짓으로 하루치 슬픔을 덮는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경동탄광 선탄부의 모습. 여자 광부의 섬세한 손놀림에 따라 잡석과 갱목, 철사, 경석 등 각종 이물질이 선별된다. ©박병문
지하 막장에서 올라온 탄을 선별하는 선탄부. 주로 막장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들이 근무한다. ©박병문
©박병문
©박병문
© 임종진
그 눈빛을 따라

사진 임종진·글 서효인(시인)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는 삼촌이며 숙모며 하는 동네 어른들이 모여 5공 청문회를 텔레비전으로 보던 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젊은 그들이었는데, 어린 나에게, 우글우글 둥글게 모여 텔레비전을 보던 어른들의 모습은 온통 주름살로만 기억된다. 우그러진 몸으로 기나긴 시간을 통과해 여기까지 왔다. 주름 속에 숨어 형형히 빛나던 눈빛이 있었음을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 눈빛을 아직은 눈이 부셔 바로 쳐다볼 수 없다. 삼촌이며 숙모며 하는 동네 어른들이 진짜 노인이 되어버린 지금까지도 우리는 눈빛만을 빛내며 어두운 구석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날이 밝아오고 있는지, 애써 궁금해하면서.

© 신병문
누렇게 신음하는 낙동강

사진 신병문·글 이오성 기자

흐르지 않는 강은, 땅처럼 굳어간다. 몸속 혈관이 막히듯 물줄기도 막혔다. 경북 김천을 휘휘 돌며 흐르는 감천(甘川)은 구미시 선산읍에 이르러 낙동강 상류와 만난다. 이 작은 강과 함께 쓸려온 모래는 본디 낙동강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쌓이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구미보가 생기고 낙동강 물살이 막히면서 모래는 큰 강으로 흘러가지 못한 채 쌓여간다. 강과 강이 만나는 합수부는 마침내 동맥경화를 일으켰다. 강은 저토록 누렇게 신음한다.

© 신선영
나쁜 사회와 좋은 미래

사진 신선영·글 이문재(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지 나쁜 사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사회가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넬슨 만델라가 남긴 말이다. 가난의 범주는 좁지 않다. 없는 사람뿐 아니라 아픈 사람, 약한 사람, 생각이 다른 사람도 포함된다. 만델라의 기준을 들이대면 우리 사회는 나쁜 사회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이 고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약자의 범위를 가축까지 넓히면 우리 사회는 더 나쁜 사회다. 닭과 돼지를 거의 매일 섭취하면서도 우리는 가축의 생명을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땅이 병들고 하늘이 탁해지는데도 건강과 장수를 염려하고 풍요를 구가하려 한다. 이것이 미래가 사라지는 근본 이유다. ‘공장’에서 사육되는 닭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이 살아날 때, 그때부터가 미래다.

© 이상희
결과는 정의로웠나

사진 이상희·글 김금희(소설가)

우리는 어느 한순간에도 완전히 안전해지지 않는다고, 모두에게 삶은 그토록 불안정하다고 넘기기에는 어딘가 비겁한, 명백한 죄책감을 원전 문제는 우리에게 안기고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생산된 전기로 편의를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일정한 망각이 필요한데, 우리가 일상을 영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 망각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너무 명확한 위험은 오히려 의식을 마비시키고 망각을 돕는 것일까.

© 조남진
우리 집 생존 배낭 6개

사진 조남진·글 피터 김용진(신촌서당 대표)

4층 빌라가 불안해 근처 단독주택으로 피신했다. 지진이 나면 근처 중학교 운동장으로 가야 하는데 다섯 살, 한 살 아이를 데리고 그 허허벌판에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경주에 이사 오고 얼마 뒤 지진을 겪었다. 쿵 소리가 나고 천지가 흔들렸는데 규모는 3.2. 그날 우리 가족은 생존 배낭을 싸기로 했다. 현관 앞에 항상 놓아둘 생존 배낭. 다섯 살 윤슬이는 좋아하는 동화책 <옥토넛 탐험대>와 색연필을 유치원 가방에 챙겼고, 나는 기타 한 대를, 아내는 둘째의 분유와 이유식·기저귀·비상약·옷가지들을 챙겼다. 거기다 몇 가지 추가하니 우리 집 생존 배낭은 6개. 우리는 아이 둘을 안고 가방 6개를 들고 4층 계단을 바쁘게 뛰어내려와 빌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둔 차로 향했다. 이건 삶이 흔들리는 일이다. 불안은 끝이 없다. 경주 옆 포항. 그곳에도 생존 배낭이 현관 앞에 놓이겠지.

© 박김형준
다시 일어선 ‘작은 거인’

사진 박김형준·글 김민섭(사회문화 평론가)

고층빌딩 사이에, 나도 선다. 허리를 펴고 너희보다 꼿꼿이 선다. 너희가 내려다보지 않듯 나도 올려다보지 않는다. 그 골목골목마다 내가 있고 우리가 있다. 웃으면서 삶을 볶아낸다. 그 삶은 고층빌딩을 지탱하는 시멘트보다도 굳고 진득한 것이다. 우리는 흔들리지만 허물어지지 않는다. 어디로 이주하더라도 결국 우리의 삶이 민들레 꽃씨처럼 다시 어느 골목에 정착해 작지만 메워지지 않을 균열을 피워낼 것을 믿고 있기에, 그렇게 살아왔기에, 빌딩처럼 서서 웃는다. 더 오래갈 것은 우리의 삶뿐이다.

© 장준희
© 장준희
© 장준희
우리는 사라져야 하나요

글·사진 장준희

미얀마 북서부 라카인 주(아라칸 주) 사츄리아 마을에 사는 일곱 살 맘모슈와. 지난 8월26일 소년은 불교도인 라카인족 민병대의 습격을 받았다. 칼로 베인 깊은 상처를 입은 소년은 겨우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으며 이제 오른팔을 쓰지 못한다. ‘국경없는 의사회’에 따르면 지난 8월25부터 9월24일까지 한 달간 로힝야족 6700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그 가운데 730명이 다섯 살 미만 어린이다. 로힝야족 62만명이 학살을 피해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되었다. ‘인종 청소’의 중심에는 한때 민주화의 상징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던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이 있다.

불교도 민병대 수십명에게 친구 9명과 함께 집단 성폭행을 당한 로힝야족 소녀 자하라(16). 언니와 단둘이 국경을 넘었다.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 캠프. ©장준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맘모슈와 ©장준희
유니세프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프로그램을 받으며 춤추고 있는 로힝야 어린이들 ©장준희
© 성남훈
우리의 마지막 얼굴

사진 성남훈·글 문태준(시인)

불이 사그라진다. 바람이 나간다. 혈액의 운행이 멎는다. 한 사람이 그렇게 우리와 이별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시 ‘죽은 가난한 사람에게’에서 이렇게 썼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난한 사람을 묻는다;/ 우리의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 이제 우리는 적어도 안다 그가 얼마나 갖지 못했는지를,/ 그가 지상에 살 때 우리가 그를 돕지 않았다는 것을.”그러나 그는 이제 지평선처럼 평온하다. 허공과 땅과 높은 별과 바람과 큰 바다는 다시 그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는 다시 깨끗한 생명을 받아 돌아올 것이다. 오늘 그가 차갑게 식은 몸이 되더라도 그의 눈빛이 땅에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고요한 광명, 적광(寂光)이 충만하므로. 우리가 지켜보는 때에 그는 떠났다.

© 신선영
MBC를 다시 질문하게 하라

사진 신선영·글 배순탁(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살다 보면 우스갯소리에 진실이 담겨 있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된다. “인생 몰라”라는 말이 대표적일 것이다. 부당하게 쫓겨난 MBC 최승호 PD가 1997일 만에, 그것도 사장으로 컴백한 저 풍경을 이 표현이 아니고서는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말이다. 민주주의란, 국가와 권력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제도다. 이는 언론 매체가 중요한 바로 그 이유이기도 하다. 한 인터뷰에서 최승호 사장은 MBC가 곧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확언한 바 있다. 그 약속이 헛된 것이 아님을, 그는 사장 취임 후 조금씩 증명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가 방송작가들, 청소 노동자들에게도 그 누구보다 따뜻한 사장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럴 거라고 믿는다.

© 신선영
“우리가 옳으니까요”

사진 신선영·글 조남주(소설가)

KTX 해고 여승무원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파업, 해고, 노숙투쟁, 고공농성, 강제연행 같은 단어를 담담하게 주고받았다. 이제 우리는 이런 얘기를 울지 않고 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싶었다. 밤에 혼자 녹음 파일을 듣는데 중간중간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2년 일하고 12년째 싸우고 있다. 무려 12년. 열정과 기대로 빛나던 20대를 통째로 잃었다. 부당이익금 반환 소송까지 당해 1억원 넘는 빚이 생겼고, 그 부담감에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가 옳으니까요. 내가 이걸 놓으면 아무도 대신 싸워주지 않아요”에서 재생을 멈추고 한참 생각했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을 바꾸고, 안전을 돈으로 계산하지 않고, 여성의 일을 임시와 보조 업무로 제한하지 않으려는 싸움. 우리 모두의 싸움.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 윤성희
우산을 갖지 못한 사회

사진 윤성희·글 전혜원 기자

이 땅에서 일하는 열 명 중 아홉 명에게는 우산이 없다. 비정규직 100명 가운데 비를 피할 우산이 있는 사람은 3명이 채 못 된다. 30인 미만 사업장에 다니면서 우산의 보호를 받는 비율은 0%대에 머문다. 우산을 가진 자들이 때로 처지가 더 나쁜 이들을 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우산의 이름은 노동조합이다.

© 변백선
© 정운
다른 말을 찾지 못해서

사진 변백선 정운·글 이창근(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책기획실장)

고통을 받는 이들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아픔이 무참하다. 그래서 말을 가려 쓴다. 직설로 내뱉고 직진으로 치달았다간 삶도 함께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스크린도어에 낀 10대 젊음이 소멸한 뒤에라야 지하철 안전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르고, 실습생이라는 이름의 10대 청소년이 죽어서야 현장실습 착취의 기계가 멈춰 섰다. 쫓겨나고 내몰린 이들은 오늘도 땅을 벗어나 굴뚝 위로 번쩍이는 전광판에 올랐다.

11월12일 서울광장. ‘2017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 ©변백선
3월4일 유성기업. 노조 탄압에 맞서 목숨을 끊은 한광호씨 장례식이 사망 353일 만에 치러졌다. ©정운
© 정택용
목숨을 걸어야 사는 세상

사진 정택용·글 이진우(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직업환경의학 전문

1970년, 노동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요구하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1987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외쳤다. 촛불항쟁으로 세상이 바뀌었단다. 하지만 노조 조직률은 10%에 불과하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을 외친다. 자신의 모든 것, ‘목숨’을 걸어야 겨우 살아남는다.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목숨을 걸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세상은 언제 올까.

© 이원웅
© 이원웅
© 이원웅
© 이원웅
© 이원웅
이것 또한 의사의 일이라…

사진 이원웅·글 남궁인(응급의학과 의사·작가)

응급실 의사 업무에는 비단 몰캉한 환자의 배를 어루만지거나 컴퓨터로 지시를 내리는 것만 있지 않다. 오히려 그중에는 가끔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는 기상천외한 일이 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먹다 남긴 알약을 하나하나 세어 분류하고, 그가 어떤 약을 얼마나 먹었는지 가늠하는 것.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환자의 손목에 일렬로 나 있는 열상을 꿰매는 것. 목숨을 끊기 전 억울한 인생을 정성스럽게 토로하는, 맞춤법도 안 맞는 유서를 읽는 일 따위다. 하지만 수액과 피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현장의 다른 업무처럼, 이 또한 생명을 살려내기 위한 일이다. 응급실 의사의 일이란 계속 이런 일일 것이다.

피 흘린 환자의 이동식 침대가 지나간 바닥. ©이원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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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웅
©이원웅
© 박종우
© 박종우
사랑을 사는 유람선

사진 박종우·글 장일호 기자

중국의 신흥 부자들에게 사랑은 사냥하는 것. 거액을 건네받은 ‘러브 헌터’가 거리로 나선다. A4 용지보다 가는 허리, 휴대전화로 가려지는 종아리…. 구혼자가 원하는 신체 조건이 드러내는 건 결국 사랑과 결혼의 앙상함이다. 그들의 귀한 외아들에게 러브 헌터가 중매하는 여성은 사람일까, 사냥감일까.

한 러브 헌팅 참가자가 A4 용지를 허리에 대보이고 있다. ©박종우
러브 헌팅 회사에서 주선한 양쯔강의 선상 남녀 만남 행사. 남녀 옷차림새가 이 행사의 성격을 말해준다. ©박종우
© 이재갑
122명이 사망한 ‘문화유산’

사진 이재갑·글 문정우 기자

“엄마, 등대만 새거네.” 아이의 눈은 날카로웠다. 크루즈선에서 군함도를 바라보던 한국의 초등학교 3학년짜리가 엄마에게 말했다. 아파트와 학교, 병원까지 다 폐허가 됐는데 등대만 새하얗다. 이곳에는 1974년 폐쇄되기 전까지 등대가 필요 없었다. 밤에도 대낮같았다. 일본 근대화에 동력을 제공한 이곳 하시마 해저 탄광에 강제징집된 조선인 광부는 1944년 800명이 넘었다. 확인된 사망자만 122명이다. 사고가 났다 하면 막장에서 일하던 조선인이 먼저 죽었다. 낯이 아무리 두꺼워도 문화유산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차라리 범행 증거에 가깝지.

© 안세홍
© 안세홍
© 안세홍
이수단 히도미 리펑윈

사진 안세홍·글 변영주(영화감독)

1994년 중국 무한(武漢·우한)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났다. 무한 인근의 당시 일본군 해군기지에서 강제로 위안소 생활을 했던 할머니들. 일본군은 전쟁이 끝난 후 그들을 방치해 이곳에 그대로 남겼다. 대부분 경상남도가 고향이지만, 한국전쟁 당시 모든 무국적 조선인에게 북한 국적을 취득하게 한 정책 때문에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삶은 밝았다. 중국 정부로부터 제국주의 피해자로 인정받아 지원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유공자급의 생활보조금을 할머니들에게 지급한 이후였다. 우리가 할머니들을 대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수단 할머니는 과거의 상처로 아이를 낳지 못했다. 선물받은 인형을 아기라고 여겨 한시도 놓지 않았다. ©안세홍
이수단 할머니는 1970년 평양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닿았지만 3년 뒤 연락이 끊겼다. 생전 고향에서 보내온 사진을 소중히 간직했다. ©안세홍
1921년 조선인 이수단으로 태어나 한때 중국 오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히도미로 살았다. 2016년 중국인 리펑윈(李風雲)으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95세. ©안세홍
© 안해룡
아베와 싸우는 아이들

글·사진 안해룡

일본 고등학교의 수업료 무상화 제도가 2010년 4월 시작되었다. 그해 11월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하자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에 대해서만 수업료 무상화를 유보했다. 사실상 배제였다. 조선학교가 북한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제재를 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판단이었다. 4년이 지난 2014년 2월17일 도쿄 조선고등학교 학생 62명은 “평등권과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도쿄 지방법원에 냈다. 3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러 2017년 9월13일 1심 판결이 나왔다. “원고들의 청구는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조선학교 수업료 무상화 배제를 정당화한 이 주문을 읽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 손승현
© 신선영
어제보다 먼, 내일보다 가까운

사진 손승현 신선영·글 김형민(PD·<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저자

해거름마다 기차 안에선 신음 같은 중얼거림이 들렸지. “계속 서쪽이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 하는지는 도시 몰랐소. 칭얼대던 애들도 잠잠해지고 날짜 헤기를 그만두고도 기차는 그저 서쪽으로 달렸지. 카자흐스탄 땅에 발 디뎠을 때 눈에 익은 풍경이라곤 파란 하늘과 태양뿐, 흙도 물도 공기도 낯설고 느끼하고 메스꺼웠소. 부모에게 버림받아 길바닥에 팽개쳐진 갓난아이나 그 마음을 이해할까. 살아야 했소. 이름 높던 홍범도 장군이 극장 수위로 여생을 마쳤듯 끌려온 고려인들은 땅을 갈든 양을 치든 아등바등 살아내야 했소.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그들의 속담을 들려주며 위로했지. “어제보다 더 먼 것은 없고, 내일보다 더 가까운 것은 없다.” 우리에게 어제는 이미 없었지만 내일이 가깝다고 느껴진 적도 없소. 우리는 항상 오늘뿐이었으니까.

한 안드레이 씨(뒷줄 오른쪽)의 가족사진. 카자흐스탄 알마티. ©손승현
강제 이주 고려인들이 집단으로 묻혀 있는 무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신선영
© 신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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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도시를 헤매는 소년들

사진 신웅재·글 공유정옥(반올림 활동가·직업환경 전문의)

2016년 세계인들이 버린 전자 쓰레기 4500만t 중 80%는 중국이나 아프리카에서 비공식적으로 재활용 처리된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의 아그보그블로시(Agbogbloshie)는 전자 쓰레기 처리장의 대명사이다. 이곳의 공기, 물, 흙과 사람들의 소변, 혈액, 모유에서도 오염 물질이 발견된다. 반도체 생산은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지하수 오염, 유산, 기형아 출산, 암을 초래한 뒤 아시아로 거점을 옮겼다. 한국은 2007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의 백혈병이 알려지고 나서야 그 유해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몇몇 대기업은 원인 조사와 예방 대책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훨씬 많은 돈을 들여 해외 생산설비를 지어왔고 위험한 작업은 이미 협력업체들에 전가되었다. 유해하고 위험한 노동은 없어지지 않고, 다만 눈에 띄기 어려운 곳으로 옮겨지고 있다.

가나의 아그보그블로시로 흘러 들어오는 전자제품 폐기물은 슬럼가 난민들의 생계 수단이다. ©신웅재
버너보이(Burner Boy). 아그보그블로시에서 전자제품 폐기물을 태울 때 나오는 구리 선을 모아 생계를 유지하는 소년을 일컫는다. ©신웅재
재활용이 불가능한 부품은 구리 선을 얻기 위해 태운다. ©신웅재
아그보그블로시를 관통하는 오도우 강은 썩어서 고여 있고 주변에 모기들이 들끓는다. 다리 위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 ©신웅재
© 이동근
© 이동근
가족의 의미를 묻다

사진 이동근·글 최은영(소설가)

사진작가의 말에 따르면 보티투 씨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남편의 허락이 필요했다고 한다. 사랑이 결혼의 필수 조건이 아니더라도 결혼 관계에서 두 배우자는 동등한 관계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젠더적 불평등이 부재한 결혼 관계는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아내·남편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은밀하게 작동하는지 적나라하게 작동하는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여성은 결혼 안에서 남성과 동등한 시민의 지위를 진정으로 보장받고 있는가. 외국인 여성 ‘매매혼’은 우리 사회에서 갖는 결혼의 함의를, 그 속에서 여성의 역할과 지위를 슬프도록 분명하게 보여준다.

고향인 베트남 건터에서 친정 부모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이동근
부산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보티투 씨. ©이동근
© 신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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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기쁜 사람이 있다

사진 신선영·글 김현(시인)

어린 시절 집에 아무도 없을 때면 화장하고 엄마 하이힐을 꺼내 신고 전신 거울 앞에 서서 김완선의 ‘리듬 속에 그 춤을’을 따라 부르며 즐거워하곤 했다. 그때의 나를 지금에 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냥 나일 뿐이다. 화장은, 가발은, 화려한 의상과 하이힐은, 무엇보다 노래와 춤은 나를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려는 가장 직접적인 오브제이자 가장 마술적인 오브제이다. 살면서 한 번쯤 노래하는 ‘디바’와 춤추는 ‘록스타’를 꿈꿔본 이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결국은 조금 더 기쁜 사람이다. 누군가의 기쁨을 혐오할 권리, 아무에게도 없다.

7월15일 서울광장. 퀴어문화축제 공연 전, 드래그 퀸 쿠시아 디아멍 씨. ©신선영
안무 연습을 하고 있는 쿠시아 디아멍 씨(왼쪽 두 번째). ©신선영
퀴어문화축제 공연 무대. ©신선영
퀴어문화축제 행사장에 마련된 성 중립 화장실. ©신선영
© 엄문희
물소리가 아름다워 강정 주민이 되었네

사진 엄문희·글 유현아(시인)

어느 해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울컥했습니다. 말랑말랑했던 손등은 나무껍질처럼 딱딱해 물을 주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곳을 다녀간 수많은 여행객 중 한 명이었으나, 돌아가지 않고 강정 주민이 되었습니다. 돌들 사이로 흐르던 물소리가 아름다워서, 라고 내게 말했습니다. 새까만 손등에 달처럼 둥근 열 개의 손톱이 그녀와 함께 노래를 합니다. 크리스마스카드에 손 글씨로 꾹꾹 눌러씁니다. 한 줄로 그녀의 안부를 묻습니다. 잘 지내고 있니, 대신 잘 지내고 있지?

© 이명익
© 이명익
들을 지키는 노병들

사진 이명익·글 김수상(시인)

엄동설한에 누가 할매들을 길가로 불러내는가. 봄동 뜯고 감자 찌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화투나 치고 있어야 할 할매들을 누가 자꾸 불러내는가. 이 마을엔 법이 없어진 지 오래라며 이장님이 마을 방송을 했다. 경찰에게 맞은 부녀회장님의 앞니는 아직도 낫지 않았다. 할매들에겐 유모차가 탱크다. 할매들이 길을 막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곳이 전쟁터다. 소야(韶野), 아름다운 들이라는 소성리의 옛 이름이다. 할매들이 옛날을 돌려달라고 길을 막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평화를 빼앗기면 봄조차 빼앗긴다. 사드는 가고 평화는 오라!

성주 사드 배치 예정지인 롯데 골프장 인근 소성리 주민들이 골프장에서 빠져나가는 물품을 막기 위해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이명익
2016년 7월12일 이후 경상북도 성주는 전과 같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이명익
© 조남진
해빙의 기운은 언제쯤?

사진 조남진·글 남문희 기자

한·미 공군이 12월4일부터 나흘간 F-16 등 항공기 230여 대를 동원해 역대 최대 규모로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 훈련을 진행했다. 미군은 F-22 6대, F-35A 6대, F-35B 12대 등 스텔스 전투기 24대를 투입했다. 처음으로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주야간 전천후 ‘Pre-ATO(공중임무명령서)’가 부여됐다. 유사시 북한 핵심 표적 700여 개를 일거에 타격할 수 있도록 각각 임무가 부여된 것이다. 북한 내 주요 표적과 미사일 이동발사차량(TEL) 등 이동표적, 장사정포가 주요 타격 대상이다. 언제쯤 해빙의 기운이 한반도를 감쌀까?

© 신선영
더 세게 부딪쳐라

사진 신선영·글 김세윤(영화 칼럼니스트)

4월6일 열린 ‘2017 국제 아이스하키연맹 여자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4부 리그)’ 4차전. 한국과 북한이 맞붙었다. ‘우리는 하나’를 외치는 관중 앞에서 몸은 자주 하나로 포개졌다. 몸싸움 보디체크(body check)를 하느라 남북한 선수들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남북의 충돌은 곧 위기다. 휴전선에선 그렇다. 그러나 남북의 충돌은 곧 화해다. 얼음판에선 그렇다. 더 밀치고 더 부딪쳐 더 강하게 충돌할수록 남북의 긴장이 차츰 완화되는 역설의 현장. 두 줄로 마주 선 저들이 언젠가 한 줄로 나란히 서는 한 팀이 될 그날까지. 충돌은 계속되어야 한다. 더 자주 더 세게 부딪쳐야 한다

'2019 올해의 사진'에 참여한 사진가

김흥구

프리랜서 사진가. 해녀의 삶을 담은 <좀녜>를 펴냈다. 현재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트멍’ 작업을 담담히 그려나가고 있다.

박김형준

도시 재개발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 스마트폰 사진도 즐겨 찍는다.

박병문

강원도 태백 출신으로 광부들의 인생을 찍고 있다. <아버지는 광부였다>를 출간했다.

박종우

사라져가고 변화해나가는 이 세상의 이모저모를 이미지로 수집하는 사진가이다. <임진강> <히말라야>를 출간했다.

변백선

<노동과 세계> 사진기자. 신자본주의 속 노동과 인권 등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기록한다.

성남훈

‘유민의 땅’이라는 주제로 세계 구석구석을 찍고 있으며, 사진 집단 ‘꿈꽃팩토리’를 이끈다.

손승현

사진가, 영상인류학자. 사람과 그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사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신병문

대학에서 지리학을 공부하고 우리 땅 구석구석을 하늘과 땅에서 기록하는 사진가이다.

신선영

<시사IN> 기자. 나와 당신이 있는 지금 이곳에 궁금한 게 많다. 천천히 오래 사람을 기록하고 싶다.

신웅재

자아를 성찰하며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회 이슈들을 목격하고 증언하기 위해 카메라를 잡았다.

안세홍

아시아의 일본군 성 노예 피해자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겹겹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안해룡

사진가, 다큐멘터리 감독. 현재 재일 조선인의 역사와 민족 교육, 조선인이 관련된 일본의 전쟁 유적을 기록하고 있다.

엄문희

‘해군기지 반대 투쟁은 끝난 게 아니냐’는 질문을 안고 제주 강정마을에 산 지 2년이 지났다.

윤성희

글 쓰다가 사진 찍는 사람. 자본과 권위 같은 보이지 않는 힘들의 영향과 그 속에서 쉽게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한다.

임종진

사진심리상담사. ‘사진 치유공간 공감 아이’ 대표. 전 <한겨레> 사진기자.

이동근

결혼 이주여성, 탈북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명익

<시사IN> 기자. 사진가와 사진기자의 경계 어딘가에 그가 있다.

이상희

부산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 수년간 고리·신고리 원자력발전소와 그 주변에 사는 경계인들을 취재해왔다.

이원웅

응급실 근무 12년차 의사.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싶어 9년째 응급실 사진을 찍고 있다.

이재갑

영남대학교 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 하나의 한국인>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등을 출간했다.

장준희

‘Loop media team’ 소속 프리랜서 사진가. 아시아·중동·아프리카 등지의 분쟁·난민·빈곤 등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한다.

정병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낀 채 사회현상을 기록하고 수집한다.

정운

페미니스트, 사진가. 스스로 사진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 없던 법학도였다.

정택용

일하는 사람들의 땀과 생태를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에 관심이 많은 사진가.

조남진

<시사IN> 기자. 박근혜 게이트 당시 대한민국 권력 서열 1위 최순실 ‘용안’ 사진을 특종했다.

주용성

우리와 가까이 있지만 동떨어진 듯한 사람들과 공간을 찍고 있다.

최형락

사진가, <프레시안> 기자.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공저)를 펴냈다.

홍진훤

인간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버린 빗나간 풍경들을 응시하고 카메라로 수집하는 일을 주로 한다.

이상엽

르포르타주 작가이자 사진가. ‘2017 올해의 사진’ 큐레이터 역할을 맡았다.